[인터뷰] 자책으로 살던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된 날
“책이 너무 좋아서 이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라는 메일의 한 문장을 읽고, 만난 리드앤두 독자 인터뷰

리드앤두는 책이 한 번 읽히는 데서 멈추지 않고, 독자의 삶에서 직접 작동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책을 만듭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책을 읽고 실행해본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늘 상상하고 있던 독자 인터뷰를 실행할 수 있던 건, 이루비 독자님이 보내주신 한 통의 메일 덕이었어요. 만화가 이루비 님은 최근 ADHD 진단을 받고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 시점에 《아 맞다, 나 ADHD였지?》를 만났고, 북토크에 참여한 뒤 단숨에 책을 완독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책이 너무 좋아서 이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라는 메일의 한 문장을 읽고, 루비 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책을 읽고 위로받는 것을 넘어, 만화가로서 신경다양성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는 루비 님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지금부터 그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Q. ADHD 진단을 받은 지 2주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아 맞다, 나 ADHD였지?》를 처음 접했을 당시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이 책은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북토크 소식으로 먼저 접했어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하니 더 신뢰가 갔고, 귀여운 표지 덕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의 경험담과 의학적인 설명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읽기 쉬웠어요. 진단받은 지 2주쯤 되었을 때의 저는 여전히 제가 ADHD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점점 확신이 들었어요. ‘아, 맞구나.’

Q. ‘이 책을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공감됐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책 속에 등장하는 ADHD인의 이야기 중 공감되었던 특성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책을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에요. 밑줄을 긋고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고, 여백에 생각도 쓰지요. 이 책에는 정말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스티커도 붙어 있어요. ‘너무 공감돼서 짜증이 난다’라고 쓴 페이지도 있을 정도예요.
전반적으로 다 공감이 되었지만, 챕터 3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ADHD의 속사정’이 특히 좋았어요. 이 장에서는 ADHD에서 비롯된 일상의 악순환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작가님의 경험과 뇌의 성향에 관한 용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챕터 3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를 보며, 그동안 풀리지 않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어요. 통장 관리, 마감일 체크, 대인관계 등은 제가 평생 자책하고 상처받으면서도 고쳐지지 않았던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책에서 어떤 식으로 보완해나가면 좋을지도 설명해줘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요,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이해하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미리 알았더라면'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Q. 그동안 풀리지 않던 ‘나에 대한 궁금증’이 ADHD라는 맥락으로 설명되기 시작하면서, 속이 시원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루비 님께 어떤 시간이었나요?
ADHD 진단을 받고, 오랫동안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가는 기분이라 속이 시원했어요. 작가로서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저 자신을 더 알고 싶어 했는데, 진단 후 스스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뻤거든요.
그래서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게 되었죠. 하지만 충분히 공감받기 힘들었고, 이야기할수록 변명만 늘어놓는 것 같아 점점 입을 다물게 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난 거예요!
노현재 작가님의 과거 이야기와 ADHD 진단 이후의 흐름이 마치 평행우주처럼 저와 똑같이 흘러갔기에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안도감’이었어요. 공감대 형성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싶어 속이 간질간질했어요.
Q. ADHD를 진단받고, 또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이나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예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고 계신가요?
제 삶은 늘 ‘시작은 창대하고 끝은 미약한’ 상황의 반복이었어요. 저는 개인 작품을 하면서 7년째 어린이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어요. 잡지에는 2년 주기로 새 만화를 그리고 있고요. 매번 다음 연재만화는 진짜 제대로 그려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쫓기듯 낸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럴 때마다 항상 자책했어요.
더 어렸을 때는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다음엔 잘해야지’라며 금방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또 실패할까 봐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병원에까지 간 거예요.
예전에는 저를 ‘뒷심 없는 사람’, ‘사차원’, ‘예민한 사람’, ‘취미는 많은데 헛짓하는 사람’으로 인식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저를 ‘창의적인 사람’, ‘섬세한 사람’, ‘즐길 게 많은 사람’으로 바라봐요. 또 ADHD의 장점과 저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고 해요.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좀 더 나답게 살아도 괜찮겠다.’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Q. 책에서는 ADHD를 가진 사람들이 풍부한 창의성이나 회복탄력성, 깊은 몰입력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도 소개되는데요. 루비 님의 삶이나 작업 경험에서도 이런 특성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나요?
저는 여섯 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부모님도 저를 응원해주셔서 늘 장래 희망이 만화가였어요. 언제나 만화를 보고 그리는 일에 몰입해 있어서 어릴 때는 ADHD라는 게 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일에 과몰입하는 특성이 제가 그림에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또 작품을 기획할 때나, 만화의 1화를 작업할 때 특히 에너지가 많이 나오는데 이 역시 ADHD 특유의 몰입력과 행동력 덕분인 것 같아요.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ADHD적 특성이 도움되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감일 하루 전에 일을 몰아서 하거나, 작품을 연재할수록 힘이 빠지는 점 등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겠죠!
Q. 이 책을 계기로 신경다양성에 대한 인식 개선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셨어요. 만화가로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으신지, 구상 중인 방향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국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ADHD인이 많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정신과 상담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고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자책하지 않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여행 중 만난 영국 친구가 있는데, 최근 그 친구도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영국은 신경다양성 분야에 관한 연구와 사회적 인식이 한국보다 더 앞서 있어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학적 차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고, 대학이나 직장에서 ADHD인에게 시간을 더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한국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ADHD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저만 해도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ADHD로서 가장 힘든 점은 사람들의 오해인 것 같아요. 특성이 변명과 핑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요.
제가 지금 ADHD에 깊이 몰입하는 이유는 나의 특성을 알고 제 삶의 지도에 불을 하나씩 켜기 위함이에요. 그 과정에서 ‘유레카!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외쳤던 건데 돌아오는 답변은 ‘요즘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였어요. 그럴 때면 왠지 제가 의지박약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이 내용을 꼭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며, 개인적으로 시도했던 보완 방법도 함께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ADHD인에게 위로의 말도 건네고 싶어요. 제가 이 책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처럼요. (물론 이것도 ADHD답게 갑자기 열정에 불타올랐다가 훅 식을지도 모르지만요.)

Q. 마지막으로, ADHD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지금의 루비 님이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을 작가님이 책에 다 써주셨어요…!
‘자책 대신 해결로, 나의 특성에 맞게 습관 개선하기,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하기, 비교 대신 나만의 속도로.’
개인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이 바쁜 21세기의 시스템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어떻게 살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만화가 이루비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만 흠뻑 빠져 지냈습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오랫동안 고민했었는데 ADHD 진단과 함께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어, 솔직하고 용기 있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2019년 어린이 만화 《노아와 페페는 매일매일 즐거워》로 데뷔했고, 대표작으로는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자란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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