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의 엉뚱발랄함? 진 Zine으로 만들어보세요

안녕하세요, 두어 님!

두잉레터는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방식으로 기록하며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고 있어요. 섭외 기준은 간단합니다! '두어 님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고민합니다.

지난달, 한 두어 님께서 설문을 통해 이런 의견을 남겨주셨더라고요.

💬"우연히 ZINE이라는 콘텐츠 형태를 파고들게 됐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ZINE도 다뤄보면 재밌을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어 님의 제안을 보고 딱 생각난 분이 있었어요. 바로 『나와의 워크숍』 저자인 김해리 님! 문화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는 해리 님은 진 ZINE 메이킹에도 진심으로, abc_zine_project를 통해 진 문화를 꾸준히 알려나가고 있어요. 

오늘의 인사말을 쓰고 있는 연두 역시 해리 님의 진 메이킹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진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참여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너무 재밌어서요…🫢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손글씨를 더하고, 꼼지락거리는 행위가 오랜만이라 즐거웠고요. 내 기록들을 가지고 요리조리 재배치해 하나의 창작물로 만드는 과정이 무척 짜릿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고요.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친구들에게 진 메이킹 모임을 만들자고 조르기도 했는데요. 오늘 인터뷰를 보고 나니 다시 추진하고 싶어졌어요. 혹시 관심 있는 두어 님 계신가요? 해리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셨다면 아래 설문를 통해 손들어주세요.🙋‍♀️ (참여 의사 있는 분들이 계시면 연두가 작은 모임을 추진해보겠습니다.)

▪️ [인터뷰] 순수한 표현을 위한 기록, 진 ZINE만들기

▪️ [오늘의 두잉] 내 안의 엉뚱 발랄함을 찾아서

원래부터 기록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무언가 남기고 쓰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꾸준하게 실천하는 일이 어렵더라고요. 그러다가 문화기획자로서 ‘나다운 방식의 일하기’를 탐구하다 보니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맞는 일하는 방식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지난 경험을 회고하는 단계가 꼭 필요하거든요. 기록해두지 않으면 기억은 사라지기 마련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일상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그때그때 남겨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리된 형태가 아니어도요.

우선 진은 인쇄부터 제본까지 스스로 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창작물을 뜻합니다. 책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종이를 접거나 오려서 실험적으로 만들기도 해요.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서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누구든 만들 수 있어요.

어느 날 ‘슈퍼소닉 스튜디오’의 주희 님이 진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해외 아트북페어 참가 조건에 ‘ZINE MAKER’라는 항목이 있는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우리도 해볼 수 있을 거 같다고요. 마침 제가 인천 배다리라는 아날로그한 동네에서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고, 동네의 성격과 진 메이킹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진 메이킹 워크숍을 열고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을 모아보자고 했죠.
그리고 2023년부터는 이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져서, 패치워크와 슈퍼소닉 스튜디오의 공동 프로젝트로 'abc zine project'를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진 메이킹'을 하나의 문화로 제안하고 있어요.

  ↗ 패치워크에서 진행된 ‘진 메이킹’ 워크숍 모습

진은 어떤 쓰임이 없어도 괜찮은 책이에요. 그 점이 재미있고, 조금은 충격적이었어요. 그동안 콘텐츠를 만들 때는 상품성을 가장 먼저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직업이 기획자인 만큼, 이 콘텐츠가 구매자 입장에서 값어치 있게 여겨질지,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메시지와 타깃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끝까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진은 만듦새가 어설프고 거칠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해야 더 매력적인 매체예요.

사실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제 첫 진인 <HIDE & SEEK>은 완성하기까지 무려 5주가 걸렸거든요. (웃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너무 열심히 했던 거죠. 진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과 반응에서 벗어나 내면의 사소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 해리님의 첫 ZINE <Hide & Seek>

사람들이 진을 처음 만들 때 막막해해요. 진은 사소할수록 매력적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원대한 걸 담고 싶어지거든요. 그럴 땐 이 진 하나가 내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좋아요.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고 계속 마감을 미루기보다, 빠르게 마감해서 여러 개를 누적하면 그 안에서 오히려 나만의 색을 발견할 수 있어요.

기록하고 싶은 게 생기면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구체화해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제가 활동 중인 인천 배다리에는 헌책방이 많은데, 헌책방 이야기를 정리해서 소개한 자료가 없었어요. 제가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종이를 접어 손으로 글씨를 쓰고 사진을 프린트해 붙여서 책방을 가이드하는 진을 만들었어요. 사람들과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했고요. 반응이 꽤 좋았죠. 이 진을 가지고 구청을 설득해서 실제 가이드북을 제작할 수 있었어요. 만약 처음부터 제대로 된 책으로 기록하려고 했으면 몇 년이 걸렸을 수도 있었겠죠?

  ↗ abc zine project 일환으로 진행한 진 팝업 전시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모습

원래도 회고 활동을 좋아하는데, 그동안은 생각과 계획을 정리하기 위한 이성적인 회고를 주로 했어요. 그러다가 올해 초에 일기장을 정산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지난 일기장을 읽는 동안 엄청 눈물이 났어요. 원래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때 4년 정도 운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게 되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일기장에도 혼란스러운 이야기만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읽어보니 과거의 제가 꽤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일기장 속 문장을 모아 <내 일에 대한 힌트 찾기>라는 진으로 만들었어요. 이미 있는 기록에서 ‘나다움’에 대한 영감을 얻는 효과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최근에는 회고와 정산의 방식으로 진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주로 기획하고 있어요.

  ↗ 회고적인 방식으로 만든 진 <내 일에 대한 힌트 찾기>

작년에는 ‘우리만의 진의 장르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양한 창작자와 진을 연결해 콘텐츠를 개발했어요. ‘매니페스토 진’, ‘땡큐 진’, ‘아카이브 진’ 등 여러 유형의 진들을 만들고 전시로도 연결했죠.

올해는 ‘로컬’이라는 테마로 지역의 이야기를 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동인천의 어린 시절 추억을 진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는데요. 진을 만들며 자기 인생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는 피드백이 많았어요. 언니와의 관계를 떠올리거나, 어렸을 때 갔던 음식점에 다시 가보기도 하고요. 사적인 역사를 진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고, 진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어요.

제가 추구하는 커뮤니티는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진을 만들다보면 ‘다 큰 어른들이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니!’ 하면서 웃음이 터지고,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게 돼요. 진을 만들다보면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빨리 친해져요. 각자 완성한 진을 돌려 보며 서로의 개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대감을 갖게 되거든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운 문화에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무래도 문화기획자이다보니 진이라는 결과물보다는 '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변화'에 더 관심이 많은데요.

  ↗ MAKE YOUR OWN ZINE 모습